부동산 활용공식 깬 SK와 신세계

입력 2021-08-30 05:50   수정 2021-08-30 09:50

“부동산을 그냥 깔고 앉아있기보단 미래 먹거리 투자 재원을 마련하는 데 쓰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다.”

최근 공격적인 투자로 주목받는 SK그룹과 신세계그룹의 부동산 활용전략을 두고 시장에선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두 그룹은 본사 사옥까지 유동화 수단으로 삼고 있다. 그만큼 적극적으로 부동산을 활용해 미래 먹거리 확보에 필요한 투자 실탄을 끌어모으고 있는 것이다. 경영난으로 빚을 갚기 어려운 지경이 돼서야 부동산을 내다팔았던 국내 대기업들의 일반적인 모습과는 다른 행보다. 이 같은 움직임은 수장인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부동산 활용전략에 바탕을 두고 있다.

SK그룹은 30일 SK리츠 상장을 위한 일반청약을 시작한다. 지난 23~24일 기관투자가들을 상대로 진행한 수요예측에서 73조5000억원을 주문받은 걸 고려하면,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도 높은 인기를 누릴 것이란 관측이 많다. SK리츠는 SK그룹의 본사인 서울 종로구 서린빌딩과 SK에너지의 주유소 116곳을 자산으로 담아서 만든 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다. SK그룹은 자산 규모만 약 1조8000억원인 이 리츠를 통해 3876억원(상장 전 투자유치 포함)을 확보할 전망이다. 상장 이후에도 서울 을지로 T타워, 성남 분당 U타워, 성남 판교 SK플래닛 사옥 등을 SK리츠에 넘겨 자금을 조달할 계획이다. 지난해 SK네트웍스의 주유소 187곳을 1조3000억원에 매각한 뒤에도 꾸준히 부동산 유동화 전략을 이어가고 있다. SK그룹은 이렇게 확보한 자금을 그린에너지, 2차전지, 정보통신기술(ICT), 바이오 등 신성장사업 투자를 위해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신세계그룹은 다음달 서울 성수동 이마트 본사 매각을 위한 입찰을 시작한다. 이마트는 본사 매각을 통해 1조원 가량을 확보하자는 게 목표다. 신세계그룹은 2019년 말 13개 이마트 매장을 마스턴투자운용에 매각해 9524억원을 조달한 것을 시작으로 잇달아 보유 부동산을 처분해 투자재원을 마련하고 있다. 지난해 3월엔 서울 마곡 부지(8158억원), 올해 4월엔 서울 이마트 가양점(6820억원)을 각각 매각했다. 경기 부천 스타필드시티 등을 담보로 한 대출도 추진하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부동산 매각으로 확보한 자금을 옴니채널(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를 넘나들며 구매할 수 있는 쇼핑 체계)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에 쏟아붓고 있다. 올 들어서만 이베이코리아, W컨셉, SK와이번스 등을 인수하며 인수·합병(M&A) 시장의 큰 손으로 떠올랐다.

부동산 유동화는 기업의 재무부서 차원에서 꺼내기 힘든 카드다. 가격상승이 예상되는 수도권 도심지역 부동산이나 임대수익이 꾸준히 나오는 건물이라면 더 팔고 싶지 않은 자산이다. 부동산 소유를 포기하지 않더라도 자금을 조달할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는 판단이 앞선다. 특히 저금리 시대에선 웬만한 대기업은 연 1~2%의 이자만 내고도 은행 대출과 채권 발행을 통해 수조원을 손에 쥐는 것이 가능하다. ‘부동산을 내다팔 정도로 자금 조달이 절실하다’는 평판이 생길 수 있는 것도 부담스러운 요인이다.

특히 자금조달에 따른 대가가 적지 않은 세일앤리스백(매각 후 재임차)이나 리츠는 비용을 중시하는 재무 담당자들의 관심을 끌기 쉽지 않다. 세일앤드리스백은 부동산 매각으로 단숨에 대규모 현금을 확보할 수 있지만, 주인이었던 집에 세입자로 들어가서 임대료를 지불해야 한다. 리츠의 경우 부동산 임대수익을 주주들과 나눠야 한다. 매년 5% 이상의 배당수익률을 내걸어야 투자자들의 눈길을 끌 수 있다. SK리츠의 경우에도 목표 배당수익률을 연 5.45%(3년 평균)로 제시했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재무구조 개선이 시급하지 않다면 먼저 나서서 이 같은 조달방식을 제안할 CFO는 손에 꼽을 것”이라고 말했다.

SK그룹과 신세계그룹도 이런 부담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부동산 유동화로 마련한 투자재원으로 새 먹거리를 육성하는 것이 중장기적으론 더 큰 이득을 가져다준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두 그룹의 수장은 최근 급속한 산업구조 재편으로 발 빠르게 사업 포트폴리오를 바꿔야한다는 의지가 강하다. 탄소경제(정유·화학)와 통신 인프라를 기반으로 사업을 펼쳐온 SK그룹은 그린에너지(2차전지·수소 등)와 플랫폼 등으로 중심을 이동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오프라인 유통시장의 강자인 신세계그룹도 거대해진 e커머스시장에서도 주도권을 쥐기 위해 신속하게 대규모 자금을 확보해 투자를 이어가려고 노력 중이다.

한 대형 증권사의 기업금융 담당임원은 “시세 100억원짜리 집에서 살고 있는데 내 월급이 점점 줄어들 수 있는 상황에 놓여있다면, 결국 집을 팔아서 내 수입을 늘릴만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며 “집을 팔아 손에 쥔 자금으로 현재 100만원인 내 월 수입을 1000만원 이상으로 늘리는 투자를 하겠다는 것이 지금 SK그룹과 신세계그룹의 전략으로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선 SK그룹과 신세계그룹에 이어 다른 그룹들도 투자실탄 마련을 위해 과감하게 부동산 유동화에 뛰어들지 주목하고 있다. 29일 한국경제신문 자본시장 전문매체인 마켓인사이트의 집계에 따르면 국내 상장사들이 올 상반기 공시한 부동산 매각 규모는 4조7567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4.7% 늘었다. 투자재원 조달보다는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부동산을 처분하는 사례가 주를 이루고 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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